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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다시보기 #22 《자인》, 《자인- 마리이야기》: 시대에 따라 변화했던 여성의 재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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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자인 姿人

2004. 2. 26. - 3. 27.

참여작가: 김은호, 김기창, 장우성, 배정례, 장운상, 권옥연, 박영선, 유병엽, 최영림, 황용엽, 조덕현, 김영주, 김근중

자인 - 마리이야기

2007. 3. 8. - 4. 28.

참여작가: 권소원,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Sasa[44], 서효정, 아나 로라 알레즈(Ana Laura Alaez), 윤리, 한동훈, 함경아



이번 전시 다시보기는 시간을 거슬러 2000년대 초반의 코리아나미술관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두 전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시명인 "자인(姿人)"은 기품 있고 아름답고 맵시가 넘치는 여인을 의미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코리아나미술관이 전시를 통해 국내 작가들이 여성의 미를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국 여인들 모습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인 姿人》(2004)

한국에서 미인도는 유교적 사회 분위기가 완화된 18세기 부터 적극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윤두서(1668-1715), 신윤복(1758-?), 김홍도(1745-?) 등은 물론 무명의 풍속화가들도 다수 제작하여 활발히 유통되었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연도미상)는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보물 1973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답니다.(관련 기사 보러가기)


(좌) 필자미상, <미인도>, 18-19세기, 종이에 채색, 117 x 49 cm, 녹우당 소장

(우) 신윤복, <미인도>,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114.2 x 45.7 cm, 간송미술관 소장, 보물 1973호



김기창, <미인도>, 1977, 비단에 채색, 57 x 50 cm,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시기 일본화 기법의 유입과 함께 주요 근대적 장르화로 부각되면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갑니다. 특히, 당시 수묵담채화 중심의 전통 화단에 다채로운 색채를 추가하여 채색화 바람을 불러 주도했던 인물은 김은호(1892-1979)가 있습니다. 김은호의 미인도는 사실적인 묘사와 유려한 선묘의 세필기법과 부드러운 색채 표현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김은호의 기법들은 그의 문하생 김기창(1913-2001), 장우성(1912-2005), 배정례(1916-2006) 등에게 이어져 근대 미인화의 새로운 전통이 세워지게 됩니다.

특히, 코리아나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기창의 <미인도>(1977)는 여인 전신상으로, 한국 근대 여성의 용모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며, 그의 미인도 작품 중 대표작업에 속합니다. 김기창은 화단에 등단할 때 부터 신윤복의 미인화를 모사할 정도로 인물묘사에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또한, <시집가는 날>이나 <널 뛰는 모습> 등과 같은 여성의 일상을 자주 그리며 미인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구축하는데 노력을 하였습니다.

더불어서 코리아나미술관의 소장품 장운상(1926-1982)의 <미인도>(연도미상)를 통해서도 미인도의 현대화의 방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장운상은 장우성의 지도를 받았으며 고운 필선과 밝은 색채를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장운상, <미인도>,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27 x 23 cm,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장운상의 <미인도> 속 여인은 머리를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빗어 넘겨 쪽을 졌고, 고개를 왼쪽 아래로 돌리고 있습니다. 가는 눈썹과 평행을 이루게 그려진 긴 눈매, 둥글고 높은 콧날, 그리고 도톰하게 두드러지는 분홍빛 입술은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의 모습에 서구적 미인상을 접목한 모습입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부채는 시원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조인수는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장운상의 미인도에는 부채가 자주 등장하는데 (중략) 일반적으로 미인도에 나타나는 부채는 불우한 여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름에 더위를 식혀주던 부채가 가을이 되면 쓸모 없어져 상자 속에 들어가 버리는데, 이것은 더 이상 남성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여성들의 불행한 처지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장운상의 <미인도> 속 여인은 서글픈 정조가 없고 오히려 밝고 경쾌한 분위기이다. " 조인수, 「한국 현대 미인도의 두 거장」, 『자인 ZAIN - 동서양의 근·현대 미인도』,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도록, 2018, p. 12.


더 나아가 《자인 姿人》에서는 20세기 여성 도상도 보여주며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여인의 변천사를 한 눈에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최영림의 <누드>(연도미상), 권옥연 <모자를 쓴 여인>(연도미상) 등을 보면 복식과 머리 스타일에서 이전의 여인 도상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최영림의 작업은 가족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전통적 질감과 색채로 표현하여 서민적인 감각과 민중적인 취향의 설화풍 작품을 일관적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많은 누드 여인 작품을 남겼는데, 대지의 색인 황색 바탕에 그려진 여체는 풍만한 몸과 온화한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좌) 최영림, <누드>, 연도미상, 나무에 유채, 23.5 x 22 cm,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우) 권옥연, <모자를 쓴 여인>, 연도미상, 34 x 26 cm,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권옥연의 <모자를 쓴 여인> 역시 큰 모자를 쓴 서정적인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권옥연은 청회색, 녹회색, 암회색 등 차분히 가라앉은 색채로 다수의 여인화를 제작한 바 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60년대 후반 제작되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전쟁 이후 회색 톤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여인들은 1950년대 이후 달라진 사람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는 오랜시간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들 중 여성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들을 통해 시대의 변화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작가들의 이상향을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스펙트럼을 환기하는 《자인- 마리이야기》(2007)

《자인- 마리이야기》는 코리아나화장품의 창립자이신 유상옥 회장님께서 15년 간 수집해온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의 12개의 작품을 중심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스펙트럼을 환기하고자 한 것 입니다. 특히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본질이나 잠재성과 언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하였습니다.


마리 로랑생, <Judith>, print, 65 x 54cm,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전시에서는 여성 이미지의 재현이 사회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여성성의 형성 과정에 개입하는 당대 이데올로기의 표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여성의 신체, 심리, 사회적 경험을 나르시즘적 시선으로, 혹은 제3자의 시각에서 드러내고, 남성 작가의 경우 사회적으로 구축된 남성으로서의 성적 주체가 가지는 여성에 대한 경험과 인식을 작품을 통해 발언하였습니다. 여성 신체를 대상화시킨 기존의 에로티시즘과는 다른 여성 에로티시즘을 드러내기도 하며, 여성 고유의 신체기관을 통해 여성성을 의미화하기도 합니다. 작품 속 여성과 여성성은 하나로 범주화될 수 없으며 열린 범주로서의 여성성을 드러냅니다. 즉, 여성은 본질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형성물로서 사회와 언어체계에 따라 변하는 유동성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하는 여성성에 대해 벨기에 출신의 페미니스트 뤼스 이리가라이(Luce Irigaray, b. 1930)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여성(woman as the not-yet)', 과정 중의 여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함경아, <P씨의 상상의 어머니>, 2006, 비디오 설치, 코리아나미술관 설치 전경


함경아의 영상 설치 <P씨의 상상의 어머니>(2006)와 <나의 사랑하는 메기>(2006)는 한 여성이 경험한 어머니와 남편의 부재, 그로 인한 막막한 그리움과 사랑을 서정적인 어조로 풀어놓은 일종의 이미지 일기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여성의 자전적인 메타포를 넘어서 드러내기와 지우기, 현존과 부재, 실재와 시뮬라크라라는 이중성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P씨의 상상의 어머니>에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P씨에게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달라는 요구를 하고, 그녀는 상상의 어머니 열 점을 그려냅니다. P씨가 그린 열 점의 드로잉들은 동영상 애니메이션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미지들이 미묘하게 교차하면서 등장합니다. 실재의 어머니가 비워진 자리에 어머니 이미지들이 현존과 부재를 반복하여 드러나고 있답니다. 하나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또 다른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것은 인식론적 어머니와 실재 어머니 사이의 혼돈,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막막한 그리움, 그리고 실재를 대체하는 이미지들의 부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움과 추억을 지우기와 드러냄의 이중성으로 의미화하는 작업은 또 다른 영상 설치 작품 <나의 사랑하는 메기>로 이어집니다. 비석과 그 위의 시멘트 소포상자로 구성된 작품은 P씨의 죽은 남편에 대한 기념비이자 그를 추억하는 동영상 앨범입니다. 상자표면에는 사랑하는 아내 메기를 잃은 남편이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음악 '메기의 추억'이 흘러나오고, 남편과의 젊은 시절 사진이 우표의 형태로 동영상으로 재생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편의 이미지가 삭제되고 익명화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실존했던 인물을 지우는 작업을 통해 작가는 부재하는 인물에 대한 기억과 사랑, 그리움과 추억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Sasa[44], <ㅍ ㄹ ㅅ . ㅎ ㅌ>, 2007, 복합매체, 가변크기, 코리아나미술관 설치전경

사진과 설치 등을 통해 작업을 진행하는 Sasa[44]는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이자 팝 아티스트인 패리스 힐튼(Paris Hilton)을 개념화시킨 텍스트 설치 <ㅍ ㄹ ㅅ. ㅎ ㅌ>(2007) 작업을 선보입니다. 작가에게 패리스 힐튼이라는 인물은 21세기 팝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들만한 여성 아티스트이자 도발적인 행동을 일삼는 아방가르드 퍼포머이며, 자신의 신체를 대상화시키는 아트 오브제입니다.

작품에서 사용된 휘장은 김일성 80주기 현수막 디자인에서 인용하여 온 것으로, 작가는 이를 통해 패리스 힐튼을 미디어 시선의 대상과 단순한 가십거리로부터 이동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분홍색 바탕의 화려한 휘장표면에 패리스 힐튼의 이름을 단순화시킨 글자가 은박으로 새겨져 8미터 높이의 벽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휘장 설치를 통해 작가는 여성 개척자로서 패리스 힐튼을 숭배하고자 하였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마리 로랑생에서 시작하여 국내·외 작가들을 경유한 《자인- 마리이야기》는 여성을 둘러싼 맥락에 대한 긍정과 비판의 시각을 여러 각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여성의 삶에 녹아있는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인 정체성을 작품으로 제시함으로써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스펙트럼을 환기하며 열린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것을 제안하고자 했던 전시였습니다.

이번 전시 다시 돌아보기에서는 코리아나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진행되었던 《자인 姿人》과 《자인- 마리이야기》를 통해 여성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자 하였습니다. 여성의 삶에 녹아 있는 사회, 문화, 심리적인 정체성을 이번 돌아보기를 통해 환기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글 작성 및 정리_코리아나미술관 학예팀/ 김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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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코리아나미술관, 『자인 姿人』 (코리아나미술관, 2004)

박혜진, 더케이뷰티사이언스 9월호, "목불 장운상의 <미인도>" (/research/research2?seq=251)

박혜진, 더케이뷰티사이언스 10월호, "권옥연의 <모자를 쓴 여인>" (/research/research2?seq=258)

박혜진, 더케이뷰티사이언스 1월호, "운보 김기창의 <미인도>" (http://www.spacec.co.kr/research/research2?seq=211)

코리아나미술관, 『자인- 마리이야기』 (코리아나미술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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